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 (문단 편집) == 명칭 == 일반적으로 전쟁은 분쟁의 주체, 전투는 발생한 장소를 그 명칭으로 쓴다. 반면 이 전쟁은 (대한민국 기준으로는) 발발한 날짜가 전쟁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및 한국사 교과서에서는 공식적으로 '6·25 전쟁'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며, 민간에서도 관습적으로 날짜-사건을 조합해 6·25전쟁으로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한국방송공사]]에서는 공식적으로 한국전쟁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전쟁의 명칭은 전쟁이 벌어진 [[돈바스 전쟁]]처럼 지역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 [[보불전쟁]]처럼 세력이나 국가의 명칭이 붙는 경우가 많다. 그도 아니라 기간이 긴 경우를 의미하고자 할 때는 [[백년전쟁]]이나 [[30년 전쟁]]처럼 전쟁이 일어난 기간을 넣기도 한다. 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넣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6·25전쟁, 한국전쟁 외에는 6·25사변, 6·25동란, 한국동란 등이 있는데 요즘에는 잘 쓰이지는 않는다. [[북한]]에서는 '조국해방전쟁' 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정전협정 체결일인 7.27을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일(전승절)이라고 포장하여 매년 열병식 등의 행사를 주최하여 기념하고있다.[* 후술하겠지만 북한이 정신승리를 시도한 거다. 승리는 커녕 중국의 병력 지원만 없었다면 국군은 북한을 역으로 통일시킬 수 있었다.] 당시 북한에서는 남측을 미국의 괴뢰정권, 미국의 하수인들이 지배하는 악의소굴, 미군정의 지배하에 놓여있는 침략당한 영토라는 기준으로 보았기 때문에 남쪽에 잔존하는 미제국주의를 몰아내고 조국의 남반부를 해방시키자는 의미에서 해방전쟁이라고 부르고 다닌다. 좀 덜 공격적인 표현으로는 '한국전쟁'에 해당하는 '[[https://www.google.com/search?q=%EC%A1%B0%EC%84%A0%EC%A0%84%EC%9F%81+site%3A*.kp&oq=%EC%A1%B0%EC%84%A0%EC%A0%84%EC%9F%81+&gs_lcrp=EgZjaHJvbWUqBggBEEUYOzIGCAAQRRg5MgYIARBFGDvSAQg2Njg4ajBqN6gCALACAA&sourceid=chrome&ie=UTF-8|조선전쟁]]'이 있으며, 북한에서도 다소 낮은 빈도로 '[[https://www.google.com/search?q=6.25%EC%A0%84%EC%9F%81+site%3A*.kp&sca_esv=557079022&biw=1536&bih=747&sxsrf=AB5stBhC-o89qPhRnucViBJoiaiFkMScFg%3A1692099915302&ei=S2XbZLL9EaC22roPksecoAY&ved=0ahUKEwjyzoCzy96AAxUgm1YBHZIjB2QQ4dUDCBA&uact=5&oq=6.25%EC%A0%84%EC%9F%81+site%3A*.kp&gs_lp=Egxnd3Mtd2l6LXNlcnAiFDYuMjXsoITsn4Egc2l0ZToqLmtwSL4EUABYAHAAeACQAQCYAXagAXaqAQMwLjG4AQPIAQD4AQL4AQHiAwQYACBBiAYB&sclient=gws-wiz-serp|6.25전쟁]]'이라고도 쓴다. [[영어]]로는 The Korean War라고 부른다. The Forgotten War라고도 한다.[* 직역하면 "잊혀진 전쟁"으로, 2차대전이 끝난 지 5년밖에 안된 상황에서 발발한 전쟁이고, 2차대전과 베트남전과 달리 승패가 결정나지 않은 전쟁이라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Korean War라는 이름은 [[제1세계]] 진영에서 전쟁을 주도한 UN군 사령부에서 붙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를 '한국전쟁'으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 한편 [[중국]]에서는 조선전쟁 혹은 미국에 대항해 조선(북한)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의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战争)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 [[임진왜란]]을 부르는 표현은 보통 '만력조선지역'(萬曆朝鮮之役)이지만, 항왜원조전쟁(抗倭援朝战争)이라고도 한다. 이는 왜적에 대항해 ([[명나라]]가) 조선을 지원한 전쟁이라는 의미로 6·25를 의미하는 항미원조와 대상만 다르다.[* 물론 항왜원조의 조선은 옛 조선왕조라 오늘날의 남북한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반면, 항미원조의 조선은 북한 한정이고 남한은 적의 입장에 있다.] 중국 측이 6·25전쟁을 어떤 식으로 바라보는지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도 전쟁을 중립적으로 바라보고자 할 때에는 조선전쟁(朝鲜战争)이라 칭한다. 일본에서는 조선전쟁(朝鮮戦争), 조선동란(朝鮮動乱) 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는 한국(韓國)을 한반도 남반부의 국가(대한민국)에 한정된 의미로 보고 아직도 조선(朝鮮)을 '한반도' 혹은 '한민족'을 일컫는 말로 쓰기 때문에 '조선전쟁'[* 일본TV에서 종종 한국계 일본인들이 [[아리랑]] 등 한국문화 공연을 하는 영상이 나올때, 반드시 "조선민요 아리랑"이라고 안내 자막을 넣는다. 현대 한류문화가 아닌 전통 한반도문화를 말할때 일본 방송과 신문은, 항상 한국문화란 표현 대신 "조선문화"라는 표현을 쓴다. (고려청자 같은 고려시대 문화라도 일단 표현은 조선문화라고 한다.)]이라는 용어를 쓴다. 대만 정부는 공식적으로 한전(韓戰)이라고 부른다. 대만에서는 [[베트남 전쟁]]도 월전(越戰)으로 부르고 있다. 다만 대만에서도 지명으로서는 조선(朝鮮)이 더 익숙하다. 대만의 아버지 [[장제스]]는 [[카이로 회담]] 때 카이로 선언문에 "조선의 독립"이라는 어휘를 반드시 넣으라고 요구하며, 이를 반대하던 [[윈스턴 처칠]][* 영국은 영일동맹이나 LON 시절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임을 공식 인정한 경력이 있어서, 일본과 원수가 된 뒤에도 조선의 독립이 껄끄러웠다.]과 갈등을 빚은 적도 있을만큼, "조선"이라는 표현을 좋아하고 존중했다. UN상임이사국 시절에도 UN회의에서 한반도를 조선이라 칭한 적이 많다. 국부인 총통이 조선이라는 호칭을 좋아하니 대만 국민들도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장제스는 결국 처칠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여 실제 카이로 선언문 원본(중국어 버전)에 "決定在相當時期使'''朝鮮'''自由與'''獨立'''"[* 결정재상당시기사조선자유여독립. 상당한 시기에 조선을 자유 독립하도록 결정한다.]이라고 명백하게 "조선" 및 "독립"이라고 적어놨다.[* 영어 버전은 Korea이다.] 민간에서는 조선전쟁(朝鮮戰爭)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52년 공보처에서 발간한 정부 간행물 "6·25사변 피살자 명부"와 1952년 국방부에서 간행된 정부 간행물 "한국전란지"로 표현되기도 했다. 행정 관서에서는 주로 '6·25'로 표기했다. 1973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제정한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서도 6·25사변일(六二五事變日)이 등장하고, 2014년 3월 24일에는 6·25 전쟁일로 개정되었다. 반면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한국전쟁이 등재되어 있다. 민간에서는 전쟁이 발발한 날짜를 근거로 6·25 라고도 불리고 있으며, 6·25[[사변]] 또는 6·25 동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6·25전쟁이란 말은 한국, 드물게 북한에서만 사용하는 단어로 한국인(한국 사람들)의 인식을 반영하나 국제적으로 통용되지는 않는다. 한편 국제적으로 (영어권에서) 통용되는 Korean War라는 명칭은 객관성 중립성을 보여준다고는 하나, 그 번역어인 '한국전쟁'은 엄밀하게 말해 중립적이지는 않다. 전쟁의 한쪽 주체인 북한에서 스스로를 '한국'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한국학계에서는 학자들의 입장에 따라서 대체로 '''6·25전쟁''' 또는 '''한국전쟁'''으로 쓰인다. 김동춘 [[성공회대학교]] 교수는 "'6·25'라는 명칭을 통해 우리가 얻을 교훈은 북한의 '적화 야욕'을 경계하고 국가 안보를 튼튼히 하자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는다…우리는 이제 이런 단세포적인 역사인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라는 주장을 남겼다. 박명림 [[연세대학교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6·25라는 용어는 사건 발생일을 기준 삼아 단일의제로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냉전시대 절대적 사유체계로서의 6·25 담론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명섭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09년에 『한국정치외교사논총』에 발표한 논문에서, '''The Korean War를 “한국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조선'과 '한국'이 가지는 역사적, 개념적 차이를 간과한 것으로 기계적인 번역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통일이후 '조선'이나 '한국'을 대신할 새로운 국호가 등장하거나 혹은 한국이라는 국호가 계속 사용될 것을 가정한다면, 그 때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명명이 적당하다고 볼 수 있느냐고 문제제기 하였다. 또한 7월전쟁, 8월전쟁, [[겨울전쟁]] 등과 같은 다른 나라의 전쟁명명의 사례에서 보이듯이 사건발발 날짜를 기준으로 명명하는 것은 오히려 자국 민중의 경험이 온축되어 있는 동시에 가장 객관적인 것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한국전쟁이란 용어를 사용할 경우 ''''한국전쟁'은 '남한전쟁', '한국이 일으킨 전쟁' 같이 전쟁 발발 주체가 모호해지거나 전도될 우려가 있다'''면서 6·25전쟁이라 부르는 게 옳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6·25가 당시 미소 냉전체제 하에서 국제전의 성격을 띤 점을 감안하면 이 전쟁의 영문 표기는 'The 6·25 War in Korea 1950-53' 혹은 'The Communist War in Korea 1950-53'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1317223|#1]],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6/23/2009062301718.html|#2]] 참여정부에서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을 지낸 바 있는 서동만 [[상지대학교]] 교수 역시도 “한국전쟁은 분명히 잘못된 명칭이기 때문에 더 이상 쓰지않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대한민국의 약칭이기 때문에, 한반도 전체를 무대로 남북이 모두 당사자인 이 전쟁의 성격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하였다. “전쟁의 무대, 전장을 기준으로 한다면, '한반도 전쟁'이라고 부르는 편이 적절”하지만, “더 적합한 명칭을 찾을 때까지 잠정적인 것으로서 일부 연구자들이 제안한대로 6∙25전쟁이라는 명칭이 적절하다”고 주장하였다. 국방부에서 발간한 군 공식 간행물을 보면 1952년부터 2004년까지 발간된 서적은 제목이 '한국전쟁'으로 되어 있었지만, 2004년부터 '6·25 전쟁'이 사용되기 시작해 2005년부터는 6·25 전쟁 한 가지만 사용하고 있다.[* [[http://www.imhc.mil.kr/|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간행물 목록에서 확인 가능.] 국방부 지정 공식 용어가 과거에는 한국전쟁이었으나 2004년부터 6·25 전쟁으로 변경된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 중인 단행 자료를 검색하면 1980년 이전에 발간된 자료 중 제목이 한국전쟁으로 되어 있는 자료는 제목이 6·25로 되어 있는 자료보다 2배가 더 많이 검색되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는 출판계나 학계에서도 '한국전쟁'이란 용어가 더 많이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http://www.nl.go.kr/|국립중앙도서관]] 소장 자료 검색에서 확인 가능.] 한국의 역사에서 벌어진 전쟁이 6·25 전쟁만 있는 게 아닌데 한국전쟁이라고 부르는 것은 혼동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고, 6·25가 사건의 성격을 포괄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5·18 민주화운동]]이나 [[6·10 만세 운동]] 등도 바꿔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다. 유럽에서도 [[2월 혁명]]이나 [[7월 혁명]]처럼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근거해 명칭을 부여한 예가 존재하므로 6·25 전쟁이라고 쓰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역사적 용어는 해당 사건을 어떻게 보는가, 즉 역사관이 반영된 것으로서 날짜 또한 그 기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 의회]]에서는 군사적인 충돌의 의미를 가진 'conflict'라는 단어를 사용해 6·25 전쟁을 지칭했다. 6·25 전쟁이 대규모 국제 전쟁으로 비치면 안된다고 봤던 트루먼 대통령과 미국 의원들에 의해 'war'라는 단어의 사용이 사실상 금기시되었다. 6·25 전쟁이 [[제3차 세계 대전|World War III]]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대중에게 6·25 전쟁이 '전쟁이지만 전쟁같이 느껴지지 않도록' 이를 축소하여 지칭한 것이었다. 당시엔 'Korean Conflict'라 불렸다.[* 굳이 번역하자면 한국에서의 충돌, 한국 사태][* Police Action(치안활동)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 탓에 6.25 전쟁과 관련된 영문 유튜브 영상들에선 '한국 전쟁이 이 정도로 규모가 큰 전쟁인 줄은 몰랐다'며 충격을 받는 미국인들의 댓글 반응을 종종 접할 수 있다.] 후에 6·25전쟁이 정치인들의 손에서 역사가들의 손으로 넘겨질 때쯤, 'war'가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대한민국과 북한이 싸웠다고 해서 남북전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남북전쟁|미국의 내전]][* 한국어 명칭으로 정작 미국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미국은 심플하게 남북전쟁을 그냥 미국 내전, American Civil War라고 자칭한다.]을 지칭하는 용어로 굳어져 있는 데다, 남북으로 갈라진 (적이 있는) 곳이 한국과 미국만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대표적으로 [[베트남]]. 다만 이쪽은 [[베트남 전쟁]]이라는 명칭이 따로 있다.] 쓰이지 않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